
"질보다 양"
글쓰기 초보는 우선 "질보다 양"이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가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란 책에서 언급했다. 초기엔 많이 글을 써봐야 한다는 것이다. 질 따질 시간이 없다. 많은 양의 글쓰기로 승부한다. 글쓰기 기본 중의 기본으로 송나라 구양수 '다독, 다작, 다상량'(책 많이 읽기, 글을 많이 쓰기, 많이 생각하기) 아니었던가? 그러다 보면 문장, 단락, 글 전체 구조화 능력 향상 된다는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0장을 쓰자'"고 했다. 내 경험상 처음부터 200자 원고지에 10장 쓰기가 쉽지 않다.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우선 글 쓰는 습관 들이기다. 아침, 점심, 밤 이든 하루 20분씩 글을 쓰자. 200자 원고지에 1장이나 2장부터 시작(400자 쓰기)한다. 인터넷상에 실제 원고지처럼 글쓰기 것도 있으니 점차 늘려간다. 유시민작가 한 강연해서 글쓰기 훈련 방법이 카페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가서 사람들이 지나갈 때 저 무슨 대화할 때 상상하며 글로 묘사해 수첩에 적어본다는 것이다. 요즘엔 폰에 노트기능 있으니 200자, 400자, 600자, 1000자, 2000자 거뜬히 적을 수 있다. 차근차근 글 쓰는 습관을 들이는 거다. 여기 블로그에 계신 분들도 선수들이니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운동근육만들기처럼 글쓰기 근육 만들기를 시작하자. 피트니스에 가서 매일 운동하는 사람이 매일 글쓰기 훈련을 못하겠는가? 운동에 맛이 들이면 아드레날린 분비가 되어 더 운동하게 되지 않는가? 요즘 동영상 쇼츠 보면서 도파밍(도파민 도는 재미를 모은다)라고 하지 않는가? '러너스(runner's) 하이(high)'가 있듯 '라이터스(writer's) 하이(high)'가 없으라는 법이 있나? 단, 지켜해야 할 규칙은 일정한 시간, 일정 글쓰기양이라는 거다. 습관은 마음의 길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끌'식 글쓰기다. 취임사, 졸업사, 생애 마지막 글, 군대 간 아들에게 편지글,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 등이 흥미진진하고 독자들에게 눈을 고정하게 이유가 뭘까? 상대에게 감동을 주고 계속 찾게 되고 심지어 달달 암송하는 이유다. 내 안 밑바닥의 영혼까지 끌어다가 쓰는 글쓰기라는 점이다.
혼이 담긴 글이다. 내 안에 있는 말랑말랑 감성은 글쓰기의 절박함으로 닥치면 나온다. 일례로 글 쓰는 사람이 마감시간이 도래해야 위에 누군가가 불러주듯 글쓰기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생애 마지막인 것처럼 글을 써야 누군가에게 마음의 진동을 주지 않겠는가? 근데 요금엔 AI 글쓰기로 다 무색해지기 했지만 그래도 혼을 담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것을 믿고 싶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해아래 새것은 없다'라고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 말했다. 글쓰기를 배우거나 훈련하는 과정에서 모방은 어쩔 수 없다. 처음엔 단순하게 외적인 기교를 흉내 내 볼 수 있고, 나중엔 논리나 감상 등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그 과정과 경로를 모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블로그 수많은 글을 보고 창조적 모방은 필연적 일이다. 내가 충분히 소화시킨 것을 모방해 독창적으로 자기 것으로 하느냐는 것이다.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좋은 글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 모방해야 한다. 나만의 글쓰기는 거듭되는 모방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나오게 돼 있다고 한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분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글쓰기 맛집으로 소개될지 모른다.
필사해 보기다. 먼저 필사해 본 분들이 대표적으로 권하는 작품은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 김승옥 작가의 소설 '무진기행',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찾아보면 필사해 보기 좋은 글들이 많다. 문장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향상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김훈 작가 소설들은 다 읽고 때때로 거듭해서 읽는다. 특히 자전거여행 에세이는 두고두고 보고 있다. 문장이 간결해서 힘이 전해 진다. 따라 쓰고 싶은 질투가 불쑥 일어난다.
그리고 명심보감과 도덕경은 옆에 자주 읽는다. 문장들이 짧고 간결하게 글 인용하기 해도 좋다. 명심보감은 그 당시 기준으로 고전을 엮어놓은 것으로 '카네기 인간관계론' 못지않게 좋다. 내 삶에 실천하기 좋은 글도 많다. 도덕경은 자기 계발서 원천이다.
우스갯소리로 글쓰기가 컨트롤+C 해서 컨트롤+V이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복사해 붙여넣기라는 것이다. 나 주장에 권위 있는 자의 글을 인용하는 뒷받침 문장을 적으면 된다. 물론 이것은 논술류의 글을 말하는 것이다. 유력 일간지 기자가 말했다. 글쓰기는 " '6대 3대 1'이라는 황금비율을 지켜라. 사실 진술하는데 내가 쓰고 있는 글의 60%를,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데 30%를, 그리고 내 자신의 주장을 담아내는 데 10%를 할애하라"라고 조언했다. 황금비율이란 게 주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기주장의 비율은 20%대 넣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에세이류는 글쓰기는 좀 다르다. 우선 " 대문자 'Man'(인류나 인간)이 아닌 'man'(한 남자나 여자)에 대해 써라."라는 것이다. 서강대 영미어문 교수이셨고 수필가였던 지금은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가 수필 쓸 때 제1의 철칙이라고 제시했다. 이 원칙은 사실 장교수님도 'E.B. 화이트'라는 유명 수필가가 자기 글쓰기의 단 하나 원칙이라고 한 것을 따 온 것이다. 이는 거대 담론이나 일반론은 울림이나 감동을 사람들에게 선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 개인이 삶에서 겪는 이야기나 희로애락에 대해 쓰면 수필을 읽는 분들에게 공감을 얻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있다는 것이다.
장교수님이 두 번째 글쓰기 원칙은 '모래시계의 형태를 지켜라'다. 도입부는 모래시계처럼 넓다가 가운데는 좁아지고 마무리는 다시 넓어지는 형태 글쓰기다. 다시 말하면 서론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한 사람의 삶이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쓰는 식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고 마무리는 다시 일반화해서 쓴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내가 좋아하는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였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그분이 남긴 에세이들을 반복해서 읽어 보곤 한다. 그분이 영미 문학의 시와 소설에서 건져낸 알짜배기 보물 구절이 넘쳐난다.
글쓰기훈련은 세상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심이 흘러넘쳐야 한다. 관심은 사랑 초기 단계다. 사랑하게 되면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보게 된다. 세상 관찰을 통해 글쓰기의 깊이가 넓이를 확장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람 관심이 뭘까 출발점은 바로 하루 '포털 키워드' 찾아보는 일이다. 거기에서 글감거리들을 포착해 낼 수 있다. 글감거리가 많을수록 글쓰기가 수월해진다. 관심사이니 글을 써놓으면 사람들에게 주목도는 넘친다. 물론 사이버 랙카처럼 자극적인 측면을 다루는 게 아니다. 좀 더 인간의 얼굴 한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면 된다. 사랑에 기반한 글쓰기 말이다.